영상탐사국

<고지전> 새로운 건 그래서 힘든거야

연구소장장장 2011. 8. 2. 01:38

* 스포일러 다수 *

1. 지금부터 나열해보도록 하자. 순전히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. 오늘이 지나면 이 나열을 잊어버릴것만같았다. 너무 많아서다. <에너미 앳 더 게이트> <에너미 라인스> <에반겔리온> <웰컴투 동막골> <공동경비구역 JSA> <라이언 일병 구하기>(는 이제는 지칠 법한 인용이지만 아무튼), <최종병기 그녀><아시나요 뮤직비디오> <AREA88><시티헌터>(만화), <장미의 이름>까지. 자, 얼추 중요한 건 메모가 되었다. 시작해보자.

2. 이 나와바리에서 최고는 역시 <에너미 앳 더 게이트>다. 두 나라간의 치열한 선전전, 영웅이 필요했던 프로파간다의 시대에서 스나이퍼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필연. 이러한 필연을 바탕으로 올라선 디테일한 스나이퍼들의 경지. 모든 게 완벽히 <고지전>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다.

3. <에너미 라인스>는 무자비한 스나이퍼 '2초'가 처음 설명될 때 떠오른 이미지이고, 
김옥빈이 처음 등장할 때는 <장미의 이름>이, 
김옥빈이 스나이퍼 '2초'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<최종병기 그녀>가 떠오른다. 
힘들 때 몰핀 주사를 맞는건 <시티헌터>가 전쟁 중 복용한 마약과 비슷한 도구고,
팔이 떨어진 채 포효하는 장면은 폭주해서 동료 에반겔리온을 찢어먹는 <에반겔리온>,
부조리한 과정에서 싸우는 전사의 모습은 영락없이 <AREA88>
영일이가 동료를 죽이는 씬은 논쟁없이 바로 <라이언 일병 구하기>

4. 당 연구소는 이것을 국내 전쟁블록버스터 전인미답의 경지로 봐야할지, 오리진 없는 영화로 봐야할지 아직도 판단을 못하겠다. 긍정의 의미로 51:49 정도 느낌이다.

5. 테크닉적으로 굉장히 깔끔한 블록버스터, 게다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한 포지셔닝.

6. 타이트숏과 롱풀숏의 승리다. 타이트숏이든 풀숏이든 회화같다. 레드원으로 찍은 것 같다. 색을 일일이 만져준 느낌이 난다. 단순히 색보정으로만 나오는 색이 아니다. 아름다웠다. 김기덕의 제자가 만든 블록버스터다. 독하게 만든 떼깔과 앵글과 워킹이다. 알 수 있다. 느껴진다.

7.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반복적이다. 고수가 죽는 순간 끝났다고 봐야하는데, 한 뭉탱이가 툭하고 더 나온다. 감독의 마음을 이해하나, 교조적인 단계로 툭 떨어진다.

8. 블록버스터에 나오는 신하균은 묘하게 이질적이다. 류승범의 원류였는데 차츰 어딘가로 멀어져가는 듯하다. 않 좋은 뜻에서다. 고수 역시 아직은 어색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, 정선희가 복귀 인터뷰로 <시사인>을 택하듯, 복귀작으로 김기덕의 제자를 택했고, 그 전략은 주효했다. 그 어색함에 덜컥거릴 정도까지는 아니다.

9. 깔끔하고, 친절하고, 재미있고, 아름답다. 정말 잘 찍었다. 그러나 새로운 게 없다. 그래서 새로 할 말이 많지 않다. 새롭기는 정말 어려운 거다.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각주footage를 다는 것에 불과한거다. <끝>